가수 은희 나이를 거슬러 데뷔했던 47년전 그때로..여전히 청아한 목소리 연예인

우리나라 포크 1세대 여성 가수였던 가수 은희.
1971년 곡 '사랑해'로 데뷔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룹 라나에로스포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가수 은희는 청아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였는데
1960년 후반에서 1970년 초반까지는 혼자 솔로로 활동했으며
가수 한민씨와 혼성듀오로 활동하면서 '꽃반지 끼고', '사랑해' ,'등대지기' 등을
불러 많은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쉽고 단순한 멜로디로 가수 은희만의 감성이 묻어져나오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은희는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되면서 패션디자인을 배우게 됩니다.
가수 은희에게는 딸 키미가 있는데, 
그녀의 딸은 제주도에서 작가이면서 해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5년에 귀국을 하였고, 사업가로 변신을 하며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출신인 가수 은희는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갈옷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 감물을 드리며 갈옷 제품을 만들며 지냈는데요.
그녀로 인해 감물염색과 갈옷의 대중화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오랜만에 방송출연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녀의 노래 '꽃반지 끼고' 가 나오니 인기곡이었던 만큼
모두 따라부르며 가수 은희를 알아보며, 추억과 낭만에 젖기도 했습니다.

가수 은희 나이는 1951년생으로 세월을 거슬러
나이를 잊고 데뷔했던 18세로 돌아가 그녀의 데뷔곡 '사랑해'를 부르며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흐뭇한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에 그때 그시절을 떠오르게 해주는 가수 은희.
앞으로 방송에서 자주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수정수라 나이들어도 건강한 동안 비결, 남편과 이혼한 사연 연예인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 정수라.
1983년에 건전가요 '아!대한민국'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 후, 도시의거리/난 너에게/환희 등의 많은 히트곡을 내면서
8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정수라는 가수 데뷔 이전에 주로 광고송이나 만화영화 주제가 등을 부르며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가수 활동을 했습니다.
활동하면서 많은 상을 수상하였고, 당시 음악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텐에서 1위 수상을 21회나 했다고 합니다.

정수라는 2006년에 사업가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가수 변진섭의 소개로 사업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늦게 결혼한 이유로 집안의 가장이었고
가족을 위해서 자신은 평생 결혼을 안하고 살게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전남편은 정수라에 대한 루머나 힘든일로 지쳤을 때, 안식처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나봅니다.
2013년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의 사업실패와 가정적인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2015년에 복면가왕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다시한번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철저한 자기관리로 50대 나이에도 전성기때와 같은 무대매너를 보여줘
대중들에게 파워풀하고 화끈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수라는 나이보다 젊게 보이기 위해서 항상 운동을 하며,
피부관리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꾸준한 운동이 동안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역시 운동을 해야 건강함과 미모를 겸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 정수라는 살이 잘찌는 체질로 고충을 이야기하며,
운동을 꾸준히하는 이유를 말하기도 했는데요.
정수라 나이는 1963년생 만54세 입니다.
나이를 잊은 동안이네요.
방송에서 자주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출연료는 회당 얼마일까? 연예인

전국노래자랑하면 떠오르는 인물 바로 송해.
그는 29세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후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1960년대~7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송해 나이는 1927년생으로 올해 92세입니다.
많은 나이에 넘쳐나는 에너지와 특유의 밝은 모습이 보기 좋은데요.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 입니다.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후,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하셨다니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송해는 1980년에 처음 방송된 KBS전국노래자랑에서 MC를 맡아
현재까지 38년동안 자리를 지키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은 만큼 그의 출연료 또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출연료는 국회 감사자료에서도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언론보도에 의하면 송해의 2시간 행사 진행비는 약 700~800만원 사이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송해 전국노래자랑 출연료는 얼마일까요?
송해 전국노래자랑 출연료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방송 1회당 300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이 한달에 4회 방영되니 한달기준 1200만원 가량의 돈을 받습니다.
송해 연봉으로는 1억 4400만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그 외 광고료나 행사료 등을
포함하는 추가적인 수입도 있겠습니다.



송해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를 모델로 하는 제품들은 
매출액이 오르며 송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있기도 합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그가 건강할 수 있는 비결로 규칙적인 목욕을 꼽기도 했습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아픔도 간직하고 있었고,
얼마전 부인도 세상을 떠나 큰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TV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김세화나이 잊은 골드미스, '나비소녀' 가족을 위해서 결혼하지 않았다 연예인

곡 '나비소녀'로 유명한 가수 김세화.
얼마전 교양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방송출연으로 근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김세화는 '나비소녀' 뿐만 아니라 '작은연인들','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등 다양한 명곡들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수 김세화는 7080세대에 유명했던 추억의 라이브카페인 '쉘부르'출신 가수로
당시 포크 가수들의 성지였다고 합니다.
유명한 곡 '나비소녀'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송창식이 작사작곡한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친분이 있었던 가수 송창식의 예비군 훈련불참으로 인한 방송출연 불가 판정으로
김세화도 한동안 그가 작사작곡한 나비소녀를 비롯한 곡을 노래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김세화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혼인것이죠.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가족생각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번의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서 하지 않았는데요.
엄마와 동생들을 걱정하며 결혼하지 않은 것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치매로 투병중이지만,
김세화가 가족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마음 아파하며 
딸이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김세화는 골프로 생애 처음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97년에 몸이 아파서 시작한 골프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골프를 모르면
동료 연예인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 또 동료연예인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좋은 지인들과 함께 맑은 공기와 함께 즐겁게 골프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출처-인생다큐 마이웨이]

김세화의 전원생활도 공개가 되어 화제였는데요. 럭셔리한 집 내부도 공개하며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는 그녀의 일상이 부럽습니다.
가수로의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홍혜걸 여에스더 아들에게 엄마손맛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 훈남 아들과 화목한 가족사진 연예인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홍혜걸, 여에스더 부부입니다.
'아내의 맛'에 출연하며 결혼 24년차에서 볼 수 있는 부부의 현실적인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에스더의 갱년기로 인해 자주 다투는 모습 등이 방송되면서
여느 부부들의 일상과 다름 없는 모습에 큰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홍혜걸, 여에스더 부부는 의사의 길로 홍혜걸이 인턴시절, 여에스더는 레지던트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후 연인으로 발전해 3주만에 프로포즈를 해서 결혼을 했다고 해서
주변에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에스더의 갱년기로 인해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든 이유로
각방 쓰는 것이 방송이 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홍혜걸 여에스더 부부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는데요.
방송에서 종종 아들을 언급하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에스더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남편 홍혜걸에게는 잘 볼 수 없었던 
다정다감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한 커뮤니티에서 홍혜걸 여에스더의 두명의 훈남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홍혜걸 여에스더 아들 하나같이 꼭 닮은 화목한 가족사진입니다.
홍혜걸 여에스더 아들은 영재로 예전의 한 방송에서 아들을 영재로 키워낸 비결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자녀들은 현재 외국에서 유학중이라고 합니다.

여에스더는 바쁜 생활들로 자녀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아내의 맛' 방송에서 평소와 달리 전복을 자연스럽게 손질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자녀들이 전복을 좋아하다며 아들을 만나러 갈때마다 전복요리를 해서 가져간다고 해서
자녀사랑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홍혜걸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로 나이는 1967년생으로 만49세이며,
여에스더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로 나이는 1965년생으로 만51세.
2살 연상 부부입니다. 방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의사부부.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가수 오은주 나이가 어느새? 꼬마 천재가수 일본 진출 가능했던 이유는 연예인

꼬마 가수 하면 생각나는 트로트 가수 오은주 입니다.
 그녀는 7살 되는 해에 처음으로 정식으로 노래를 부르며 데뷔하는데요.
'1972년 우리 엄마 돌아와요' 곡을 시작으로 여러 히트곡을 부르며 가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수 오은주는 집안에서 셋째딸로 어렸을 때 부터 노래를 잘했다고 합니다.
천재라고 불리울 정도 였다고 합니다.
7살에 가수 데뷔를 하고, 이후 8살 9살 무렵에 음반을 내며 활동을 하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명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가수 오은주는 1982년에 트로트를 부르며 무명을 벗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요.
이 후 '지나가는 비' 호응을 시작으로
대표적인 히트곡 '돌팔매'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사랑의 포로'라는 또 하나의 히트곡이 탄생합니다.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요. '사랑의 포로'는 중국의 가수가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수 활동을 하며 2009년에 일본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타이틀곡 '검은 눈물'을 비롯해 전곡을 일본어로 불렀다고 합니다.
가수 오은주의 일본 진출이 가능했던 것은
6살 때 극장공연 무대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꾸준히 일본 쪽에서 진출 제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진출로 가수 오은주는 기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었는데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한국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일본 진출까지 했습니다.


가수 오은주 나이 1966년 51세.
꼬마 천재 가수였던 그녀가 일본까지 진출한 가수로 성장하고 
또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는데요.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 독거노인을 돕는 기부를 하는 등
현재는 사랑의 밥차' 등에도 참여하며 봉사활동도 하며 살아가는
가수 오은주의 활발한 가수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양양의 고즈넉한 이야기 에브리데이

여름철 너도나도 휴가가는 성수기를 피해 느즈막히 다녀온 양양.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나 명소들은 사람이 많네요.
또 너무 사람들이 없음 재미없으니 괜찮았습니다.




이 곳은 양양의 유명한 낙산사.
바다를 품고 있는 멋진 사찰이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큰 연못의 연꽃들을 본 것 같습니다.
사람 얼굴만한 연꽃들이 펴있는 모습을 보니
심청이가 나올것만 같은 옛 전래동화도 생각나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잎이 정말 크네요.
연꽃의 연근도 보이고 구멍 뽕뽕 뚫려있는게 이렇게 보니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연꽃 참 이쁘더라고요.
하얗고 큰 꽃잎들이 참 조화롭다고할까.





저 가운데 돌상 바구니에 동전이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동전 넣기가 참 어렵습니다.
쉬워보이는데 절대 그렇지 않더라구요.





곧 꽃봉오리가 터질것만 같은 비주얼.





오랜만에 푸릇하고 이쁜 것들을 보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여행은 다녀도다녀도 늘 부족하고 아쉽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며 보고 경험하고 싶은데 꼭 그럴 날이 오길 ... ^^







가수 장미화 나이 100억 빚, 힘든 세월 버텨낸 봉사활동 이제는 봉사단체 이끄는 가수로 연예인

지금도 전성기 시절 가창력을 뽐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가수 장미화.
소름 끼치는 가창력을 선보였던 그녀는 봉사를 하며 힘든 삶 가운데 미소를 잃지 않은 가수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어서 무대에 오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었죠.



가수 장미화는 KBS 가수 발굴 노래자랑 선발대회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공개하며 가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검증되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수에 데뷔하며 '그 누가 뭐래도' 를 발표하고
 이후, '안녕하세요', '애상', '어떻게 말할까', ' 내 마음은 풍선'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가수로도 많은 인기를 얻으며 영화에도 주연으로 출연하며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장미화는 많은 활동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때에 장미화 남편과의 결혼을 선택하며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혼하고 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아들의 양육권을 가지기 위해서 남편의 빚을 떠안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액수가 100억 된다고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었는데요.
이혼 이후 가수로 복귀했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 생계형 가수로 
하루 12군데 이상의 야간업소 등의 무대를 오르며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빚 외에도 사업실패, 사기 등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수 장미화 나이, 그녀의 나이 1946년생 72세인데요.
힘든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었다고 합니다.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름다운 손길' 이라는 봉사단체를 이끌어오며
장미화 인생의 큰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낸 가수 장미화씨가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가수 장미화는 후배 가수들에게 좋은 선배로 귀감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지금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본다고 합니다.
자신있게 당당하게 살아온 가수 장미화.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절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가수 최유나 남편 말 때문에 인기곡 흔적이 탄생? 나이 잊은 미모 연예인

우리나라 대표 트로트 가수 중 한명으로 꼽힐 만큼 유명한 가수 최유나 입니다.
최유나는 가수를 하기 전에 목포 MBC 아나운서였다고 합니다.
색다른 이력이었는데요. 이후 가수로 전향하고 나서
음악경연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우승을 하게 되면서 실력파 가수로 성장합니다.



가수 최유나 나이는 1964년생으로 50대 중반의 나이입니다.
세월이 빗겨가는지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하고 있으시네요.
1985년에 가수로 데뷔를 하고 1987년에 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주제가가 히트하면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습니다.



1992년에 발표한 곡 '흔적'이 큰 사랑을 받고 많은 수상을 하며
가수 최유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흔적이라는 곡이 히트치지 않았다면
지금과 다른 환경에 있을지도 모르고,
음반의 판매량이 53만장이 넘게 팔리면서 전국으로 다니면서
밥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냈던 날들을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최유나 남편은 한눈데 반해 최유나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결혼한 일화가 유명한데요.
소개팅을 해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남편은 최유나가 가수인지를 몰랐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최유나는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이어 남편은 
'더 열심히 가수를 하지 왜 안하냐'고 물어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야기'를 하니
남편이 '해보시죠' 라고 말해 둘이 의기투합해 노력하여 곡 '흔적'이 나왔다고 합니다.



가수를 할지말지 고민하던 시기에 남편을 만나서 
최유나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에
'흔적'이라는 곡을 부를 수 있었다고 말하며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등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최유나 남편은 추진력이 강한 성격이며
남편의 젊은 시절을 자기의 꿈을 희생하며 
가수 최유나에게 올인한 것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2000년에 발표한 곡 '와인글라스'는 칸영화제에서 배우 윤정희와 이창동 감독이
레드카펫에 들어갈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현재에도 꾸준한 활동과 무대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입니다.



오정태 부인 나이 생활비 받으러 무릎 꿇은 사연 연예인

개그맨 오정태는 연극 택시택시로 데뷔합니다.
그는 특이하게 당시 MBC국장이 권유하여 길거리 캐스팅으로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길에서도 돋보이는 외모였나봅니다.



[사진출처: 오정태 미니홈피]
개그맨 오정태는 2007년에 코미디시트콤부문에서 남자신인상을
받으며 열심히 활동을 했는데요.
유명한 사건이 있죠. 소녀시대 태연을 구출한 사건입니다.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소녀시대의 무대에
한 남성이 갑자기 올라와 태연의 손을 잡고 무대밖으로 끌고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요.
이 때 MC를 하던 오정태가 소녀시대 태연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남성을 저지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소녀시대 팬들에게 영웅이 되기도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후 누구든 나처럼 했을거라는 겸손한 태도로 호감을 얻기도 했었죠.



개그맨 오정태는 2009년 5월에 부인 백아영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5년 교제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첫째 딸을 출산했습니다. 오정태는
오정태 부인과 두명의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오정태 나이 1976년생으로 41세 입니다.



오정태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정태 부인 백아영씨의 결벽증 때문인데요.
그녀의 결벽증은 온 집안을 식초냄새로 가득한 것인데, 그 이유는
물건들을 식초로 소독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오정태 부인의 습관 때문에 백아영씨 본인에게서도 식초냄새가 난나고..
이불부터 설거지까지 다양한 것에 식초를 사용하는 모습에 화제가 됐습니다.



또 한 방송에서는 무릎 꿇은 사연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요.
경제권이 남편에게 있는데 생활비를 좀 더 달라고 했더니 
무릎을 꿇으면 더 주겠다고 오정태는 이야기했답니다.
이 말을 나쁜 의도와 행동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살뜰하게 돈을 쓰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애교부리는 아내가 귀여워 장난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이야기한 것인데 무릎 꿇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교양프로그램 '사람이 좋다'에 출연하여 모든 행사와 밤낮할 것없이
가족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방송되어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든든한 가장으로써 방송에서도 좋은 활동으로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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