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 테러 [Planet Terror, 2007] -TWO against the world-

편의상 평어, 스포일러 거의... 없음
관람일 : 2008.07.08 火
동행인 : 멍군


체리 달링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혹적인 눈매와, CG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완벽한 허리를 가진 고고 댄서다. 어느 날 그녀는 그녀의 몇 가지 쓸모 없는 재능 중 하나를 발휘하다가 문득 눈물을 흘린다. 왜냐하면 그녀는 변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좀비로 변한 세상을 깨부수기 위해서.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는 2007년 부활절에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합작 공포 영화의 한 에피소드로, 국내에는 먼저 개봉한 데스 프루프에 이어 105분의 풀버전으로 국내에 개봉되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매우 간단하다. 고고 댄서인 체리 달링은 어느 날 갑자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무대를 뛰쳐나온다. 그리고 옛 연인이었으나 아직 사랑하는 엘 레이와 조우한 그녀는 그와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신인류의 지도자적 존재로 거듭난다.
중간에 생략과 비약이 있는 듯 느껴진다면 착각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 영화의 시놉시스니까... 좀비는 어디 나오냐고? 나온다.

많은 영화에서 좀비는 공포의 존재이자 연민의 존재이다. 좀비영화의 공식상, 좀비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며 좀비가 된 이들은 그들의 원해서, 또는 그들이 악하기에 좀비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속에 아군으로 등장하는 동료마저도 그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플래닛 테러의 좀비들에게서 우리는 연민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여타 영화의 좀비들보다 비쥬얼적으로 훨씬 더 끔찍한 존재이며, 또한 아군에게 전염되지도 않는다. 즉, 우리 편은 절대 좀비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말을 하는 데다가 악하고 비열하기까지 하다!
플래닛 테러의 좀비는 공포가 아니라 악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악이자 세상이다. 꿈과 세상에 절망한 체리가, 사랑과 가족에게 버림받은 다코타가 맞서야 할 세계이다.

더럽고 끔찍한 것을 질색하는 요즘의 깔끔한 아가씨들이나, 잔인한 건 봐도 징그러운 건 못 본다는 마음 약한 청년들에게 이 영화는 조금 버거울 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한 짜릿하다면 짜릿하고 끔찍하다면 끔찍한 감각을 선사한다. 하지만 2시간 내내 체리 쥬스 같은 혈액을 펑펑 튀겨가면서 쓰러져가는 좀비들을 쳐다보는 것이 솔직히 조금도 신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걸핏하면 C학점을 펑펑 날려대는 교수나, 심심하면 일단 세워놓고 잔소리부터 하고 보는 상사, 죽어도 안 올라가는 토익 점수의 마지막 50점, 주거래 계좌의 마지막 잔고 4500원. 이것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을 갈긴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안 신난다고?
거짓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하이틴 성장 영화 비스무레한 그 무언가이다. 다만 십대의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은 비둘기 모양 문신으로 남았고, 질풍노도와 같던 자아에 대한 고민은 좀비를 향한 거침없는 총질이 되었을 뿐이다. 이 영화는 격렬한 사춘기를 겪던 십대 소녀 체리가 삶과 사랑의 의미를 알고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 비스무레한 그 무언가이자, 인간이 진화하는 이야기이다. 사춘기 청소년이 좁은 자아의 껍질을 깨고 세상과 마주하듯, 체리는 영화 속 세상의 전부였던 지저분하고 더러운 마을을 때려부수고,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 신천지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인간이 된다.

여기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아주 의미있는 한 가지 교훈을 남긴다. 솔로지옥 커플천국.

치사하고 더럽고 살기 싫은 좀비 피고름 같은 세상일지언정 둘이서 맞선다면 뭐가 두려우리. 우리는 엘 레이처럼 주윤발 쌍권총을 구사하며 좀비들을 날려버릴 것이고, 체리처럼 아크로바틱하게 기관총을 쏴대며 신이 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세상과 맞서다 세상을 부숴버리고 우리만 남을 지라도 둘이라면 남태평양의 태양처럼 행복하고 황홀하리라.
Two against the world!

★★★☆

혹시 볼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조금 친절한 설명

by 리에 | 2008/07/13 23:27 | 영화「Movi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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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elacroix at 2008/07/14 10:33
'미국인이 총질하는' 재미 외에도 B급호러물을 잘 패러디한 키치함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작년에 데쓰프루프와 같이 상영할때 여친이 우겨서 가서 봤는데 무지 좋아 하더라구요 ^_^
Commented by 리에 at 2008/07/14 16:48
미국인이니까 가능한 지극히 미국스러운 영화이기도 했죠.
난 B급이야! 하고 우기면서 A급을 만들어놓은 로드리게즈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여자친구분이 좋아하셨다니...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가봐요 :)
Commented by Delacroix at 2008/07/15 00:04
백인이었거든요.
백인 여자들이란 -ㅅ-
Commented by 리에 at 2008/07/15 01:52
;; 백인만 좋아할만한 영화란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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