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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연애 이야기 2

나의 첫 연애 이야기 1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와서 이어서 씀...



나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 일반인 같은 남정네가 고백남과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간 곳은 닭갈비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운 이야기지만 난 그 날 처음 닭갈비를 먹어보는 거였기 때문에 멍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한 솜씨로 닭갈비를 휘젓는 일반인 같은 남정네의 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병약한 컨셉...이었던 고백남이 닭갈비 연기가 맵다며 기침을 해대다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는(...) 통에 나는 겨우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고백남의 기침하고 뛰쳐나가기 퍼포먼스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이 부분의 기억이 좀 희미한데, 여기서 나는 일반인 같은 남정네(이후 편의상 A군)가 나랑 동갑인 대학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와 아주 친한 사이라는 또 다른 동갑 남정네(편의상 B군)을 알게 되었다.

같은 나이였던 A군, B군과 조금 친해진 나는 이후에도 T의 모임에 몇 번 나갔다. 물론 그 때마다 고백남은 나와서 나에게 끈적거리거나 병약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그 사람들 이외에도 과장된 말투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날 피곤하게 했지만 자꾸 보다보니 적응이 되서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 A군과 B군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말투나 행동이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그 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덕분에 나는 A군이나 B군과 개인적으로 종종 만나게 되면서 T의 모임에 나가는 빈도가 점점 뜸해졌다.
사실 나의 등장과, 내가 A군, B군과 친해졌다는 사실은 T의 정치적 판도(과장된 말이 아니다.)에 큰 변화를 주게 된다. 연애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웬 정치적 판도냐고 할텐데, T는 상당히 독특한 성격의 모임이였다. T는 말하자면 지금의 듀나게시판 같은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였다. 즉 특정 포털 등을 거점으로 한 커뮤니티가 아닌 한 명의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커뮤니티였던 것이다.(듀나게시판의 경우 기술적 부분 및 서버 제공은 cine21에서 해결하는 듯 하지만 T의 경우 시샵이 프로그래머였던 탓에 전적으로 시샵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었다.) 게시판부터 대화방까지 전부 시샵이 짠 툴로 이루어져 있었던 T였기에 시샵의 권한은 막강한 것이었다. 어떤 의미 T의 회원들은 시샵의 소유인 T에 그저 빌붙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시샵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회원을 멋대로 탈퇴시키거나, 가입수칙에 맞지 않아도 자기 마음에 들면 멋대로 가입시키고,(사실 나도 그 수혜자의 한 사람이었다. 미성년자의 가입이 금지되어 있던 시기에, 미성년자이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가입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참석하지 않는 오프라인 모임을 금지시키는 등 거의 전제군주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수십명도 아니고 천명에 달하는 회원수를 자랑할 정도로 거대해진 T를 한 사람의 개인이 완전히 제어하고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그에 반발하는 세력이 생겨났다. 말하자면 레지스탕스 같은 존재들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 T 같은 회원수가 많고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의 비율이 높은 거대 커뮤니티에서는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친해진 A군이 그 레지스탕스의 리더격인 존재였다는 점에 있다. 물론 정말로 반시샵조직을 조직해서 활동을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눈에 띄게 시샵에게 반발하면서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나의 오프라인 데뷔(...)를 T의 시샵이 직접 나서서 모임을 주선해서 추진한 점이나, 시샵의 편애로 내가 가입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사실 T의 시샵에게 상당히 총애를 받고 있었다. 모임 내에 셋 남짓한 여성회원인 데다가 원로, 거기다가 스무살이라는 적당한 나이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은 나를 끊임없이 귀찮게 하던 고백남은 시샵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연애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가상 국가의 정치이야기처럼 바뀌어 버렸지만, 여하튼 나의 오프라인 등장과 A군과의 친분은 T의 정치판도에 변화를 주게 된다. 내가 A군 B군과 점점 가까워 지면서 고백남은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되고, 본래 시샵에게 총애를 받고 있던 나 역시 반시샵적인 존재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T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A군과 B군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얻어서 그나마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A군은 당시 공대 신입생이자 과대표로서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귀찮게 불러내는 나와 만나 잘 놀아주었고, B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로 주말에는 A군을 만나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중에는 학원에 다녀와서 새벽에 B군과 메신져로 대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러던 중 자취할만한 방에 하우스메이트를 구해서 나가서 살게 되었고, 매일 아침 1시간 반에 달하는 통학과 이모네 집에서 받았던 눈총과 스트레스에서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원에서도 친구를 사귀고 조금씩 적응해 나가면서 겨우 정서적인 안정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A군과 B군 모두에게 딱히 연애감정이랄 것이 없었고, 두 사람을 대등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던 시절에 나와 놀아주고, 이야기해 준 그들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었지만, 딱히 연애상대로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롯데월드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나의 말에 A군이 나를 롯데월드에 데려가 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주말에 줄곧 만나줬던 거 하며 전부 흑심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20년간 연애와 담 쌓고 살아온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만무했다. A군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굳이 B군도 같이 가자며 그를 불러냈다. 아마도 A군과 B군의 운명이 갈린 때가 이 때였던 것 같은데, B군은 그 날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며 나의 제의를 고사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A군과 단둘이 롯데월드에 가게 됐고, 나름 알콩달콩한 시간도 보내고, 롯데월드의 구조나 놀이기구 타는 법 등을 훤히 꿰고 있는(...) A군을 보면서 멋지다는 컨츄리걸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사를 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찾으면서 전과 같은 다급함은 사라졌지만, A군, B군과는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냈고 T의 모임에도 종종 나갔다.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면서 온라인 상에서 봤던 커뮤니티의 상황이나 사람의 모습이라는 게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알게 됐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나의 등장 때문에 T의 물밑상황이 커다랗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A군, B군과도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당시 잠이 많아서 늘 강의에 지각하는 B군을 위해서 어차피 아침 6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 내가 매일 모닝콜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A군은 그걸 매우 싫어하면서 반대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만 당시에 연애에 대한 눈치라곤 전혀 없었던 나는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A군이나 B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T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채 4월이 되어 4월 1일 만우절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가던 내게 A군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다. 그답지 않은 이모티콘이 가득한 문자였는데, 내용은 '사랑해 결혼해줘'라는 문자였다. 비록 연애에 대한 눈치는 없었지만 장난질에 대한 눈치만큼은 백단이었던 나는, 대번에 만우절 장난임을 눈치채고 어떻게 되돌려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 끝에 '나는 너를 진심으로 생각하는데, 네가 그렇게 나한테 장난만 하니 정말 슬프다...'라는 요지의 답장을 보냈다. 당장 답장이 올 거라 예상했지만 웬걸, 하루종일 답장이 없는 것이었다. 혹시 그가 화가 난 것인가 싶어 걱정하던 나는 저녁에 집에 가면서 화났느냐, 장난이니 너무 화내지 말라. 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날아오는 답장은 '네가 한 말이 전부 다 거짓말이면 화낼거다.' 라는 답장이 아닌가...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이쯤 되면 A군의 의도가 뻔히 보일 시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점에서 A군이 좋다거나, 그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확실한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나에게 분에 넘치도록 잘해준 그에 대한 막연한 호감은 있었지만, 확실한 연애감정으로 발전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의 고백남 사건도 있었고, A군의 문자는 확실히 나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도 할만큼 했다. 이제 나랑 연애할 건지 안 할 건지 확실히 해라.'라고. 그에 대한 친구로서의 고마움이나, 그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호감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나는 고민 끝에 '거짓말이 아니다' 라는 답장을 했다. 그리고 12시가 지난 다음, '이젠 12시가 지났으니 네 말을 믿어도 되겠지.'라는 답장이 A군으로부터 도착하고,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확히는 4월 2일부터 사귀게 된 셈인데, 만우절에 그런 일이 있고 처음 A군을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여하튼, 연애라곤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서울에서 남녀공학을 졸업하고 나름 자유로운 연애생활을 즐기며 자라온 A군에게 리드당해 처음 까페에서 옆자리에도 앉아보고, 손도 잡아보는 등 나름 신선한 첫 데이트를 즐겼다. 그리고 성격 급하게도 그 날 당일, 우리는 그래도 우리와 가장 친한 친구인 B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으로 B군을 불러냈다. 나야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었고, A군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는 즐겁게 B군에게 말했다. '우리 사귄다.'고.
우리의 말을 들은 B군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사실 이 때 A군과 B군이 정확히 나를 두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는(내가 베스트 프렌드 사이에 삼각관계로 끼었다거나 하는 자뻑스러운 발언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뒤에 설명하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하튼 B군은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며 집에 돌아가 버렸다. 그런 B군을 걱정하는 내게 A군은 단호한 어조로, '저 녀석이 너한테 마음이 있었다.'고 단언했다. 시작하기 전에 터질듯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든, 딱히 그런 것이 없었든, 기왕 시작한 첫 연애이니 그저 즐겁게 해보려고 했던 내게 B군의 태도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잠자리에 누운 내게 전화를 건 B군은 담담하게 나로서는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미안하지만 너랑 친구하는 거 관둬야겠다. 친구의 여자랑 친구하는 거 나는 못하겠다.'
그것이 B군이 한 말의 요지였다. 연애도 처음이고 애끓는 사랑의 열정 같은 것도 없었던 나는 '친구의 여자' 운운 하면서 갑자기 친구하지 말자는 B군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랑 친구한 게 먼저지 A랑 사귄 게 먼저냐, 라면서 B군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나랑 더 이상 친구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말의 느낌상 단순히 내가 A군과 사귀게 된 거 때문에 B군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끈질기게 이유가 뭐냐고 캐물었지만 B군은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일이라 말할 수 없다는 말만 할 뿐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싫다는 B군을 억지로 설득하여 다음 날 만날 약속을 잡았다. 사귀기 전부터 보였던 A군의 미심쩍은 태도, 그리고 지금 B군의 행동...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이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by 리에 | 2008/09/07 07:44 | 독백「toute seule」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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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의 첫 연애 이야기 3
나의 첫 연애 이야기 2 자기 전에 쓰고 자기... 오늘은 짧음. 다음날 나는 B군을 신림에 우리 3인방이 자주 가던 까페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친구와 여자와는 친구할 수 없다'라는 그의 발언은 지금이라면 중2병이냐? ㅋㅋㅋㅋ 하고 비웃을만한 발언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스무살이었기에 나도 그도 나름 진지했던 것 같다. 싫다고 우길 땐 언제고 부르니 나온 B군은 이유를 캐묻는 나에게 우물거리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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