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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쓰는 추모글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떠나신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장례까지 마친 후에야 겨우겨우 마른 입술을 움직여 봅니다.

어떻게 써야 좋을지 오래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어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인 서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후 평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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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기로 마음 먹고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남자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잠에 찌든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그는 다짜고짜 한마디 했다.

"지금 TV 켜봐."

멍한 정신으로 몇 번 채널을 켜야 하냐고 되묻는 내게, 그는 그저 켜보라고만 했다.
TV를 켰다. 마침 광고가 하고 있었다. 잠시 사태 파악을 못했지만, 화면 왼쪽 위에 뜬 뉴스 타이틀이 보였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을 점령한 것은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이제 진심으로 이민을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만이 나의 사고를 지배했다. 현실감은 없었다. 자다가 전화를 받으니 TV를 켜보라고 하는 애인. TV 화면에 뜬 믿기 어려운 뉴스. 이 모든 것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 자주 등장한 장면이라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믿고 싶지 않아서인지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나라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이성적인 판단만이 존재했다.

조금 지나고 그가 찾아와, 우리는 약속했던 영화를 보러 갔다. 스타트렉이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나서도 한동안 나는 그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방금 전까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 영화 속에서 또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슬픔은 저녁이 되어서야 뒤늦게 찾아왔다. 나는 그와 함께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쓰러져 울다가 잠들었다.

나는 여자고, 전라도 출신이고,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SKY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연봉을 잔뜩 받지도 못한다. 나는 심지어 유학도 오키나와로 갔다(오키나와로 간 건 내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지만 오키나와라는 곳이 일본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나의 인생은 비주류 그 자체였다. 한 번도 주류의 반열에 올라 본 적이 없고, 앞으로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그분도 그랬다. 그분은 비주류이자, 비주류로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그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을 딱히 좋아하거나 선망한 것은 아니다. 외모가 친근하다는 이유만으로 막연한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 나는 투표권이 없었고, 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될 때 나는 오키나와에 있었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라는 생각을 나도 했던 것 같다.
단순히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설움을 당하거나 이유 없는 욕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된 그날, 나는 오키나와에서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소리를 잔뜩 들어야 했다.

그때 알았다. 당시 23년 남짓한 나의 짧은 인생 속에서, 10년을 김대중/노무현과 함께 보낸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10년 전에는 이런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집권과 동시에 한국에 돌아온 나는 1년 반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많은 부당함과 현실의 벽에 부딪쳐야 했다. 10년간 현실을 모른 채 행복하게 산 대가인지, 하필 나는 귀국과 졸업을 이명박과 함께해야만 했다.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분은 비주류 중에서 가장 강한 이였다. 그런 그분마저 이 현실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비주류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나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금요일이 되었다.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월차도 월초 연휴에 맞춰 써버린 나는 꼼짝 없이 회사에 붙잡혀 있는 신세였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 중계로 영결식을 보고, 노제도 보고, 울었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지표로 삼아야 할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내 안에서 그분의 죽음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이 나라에 대한 절망과 실망감으로 떠돌고 있을 뿐이다.

어제 우리 회사에서 그분의 죽음을 슬퍼한 이는 나를 제외하고는 단 두 명뿐이었다.
나는 홍대에 사는데, 어제는 영결식 때문에 클럽 데이가 취소됐지만 거리에는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로 가득했고, 우리 집 옆에 있는 클럽에서는 새벽까지 함성이 들려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강요할 생각도 없고, 그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든 생각은 나는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한때나마 희망을 보여 주시고, 제 인생의 절반을 무난한 것으로 채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by 리에 | 2009/05/30 10:39 | 상념「Think」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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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머니짱이 at 2009/05/30 11:13
끝까지 기억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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